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의 1인당 주거 면적은 8.1평이다. 서울 원룸의 평균 면적이 약 7평인 점을 생각하면 8평은 원룸 정도의 크기인 셈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10평이 남짓한 곳에서 살고 있다. 미디어 광고에서 보이는 가구와 가전은 10평이 남짓한 공간에 놓기에는 크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서 작은 집에 놓일 가구를 만드는 도잠이 반가웠고 도잠을 만든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정혜 대표를 만나 작은 집과 순환을 얘기했다. 필요한 만큼 만들고 순환을 생각하는 도잠이라는 브랜드 뒤에는 켜켜이 쌓인 고민과 질문이 있었다.
대표님을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네. 저는 도잠이라는 가구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이정혜입니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작은 집에 사는 법이 도잠의 슬로건이에요. 대표님께서 개인적으로 추구하시는 삶의 형태나 목적, 방향이 작은 집과 연관이 있나요?
저는 거의 평생 작은 집에서 살았어요. 딱 한 번 기존에 살던 집보다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40평 정도 되는 집이었는데요. 그때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어요. 넓은 집이 아이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라 그런지는 몰라도, 제가 부엌에 있으면 애가 엄마가 없어진 줄 알고 아주 난리가 나는 거예요(웃음). 살아보니 저는 여러모로 작은 집이 더 좋았어요. 매일 아침 큰 옷장에서 무엇을 입을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삶이 단순한 거죠. 단순한 삶이 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요. 그래서 늘 작은 집을 생각하며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도잠을 만들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중 가장 오랜 기간을 디자이너로 일하셨고요.
맞아요. 그래픽 디자이너로 18년 정도 일을 했어요. 이후 작은 규모로 물건을 팔 수 있는 공예 플랫폼을 4년 정도 운영했고요. 그 시간 동안 틈틈이 작은 집에 놓을 가구를 생각했고 기술을 연마했어요. 도잠을 만들기 전에는 6개월 정도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어떻게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을 실현하려면 공업 디자인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막상 전공하고 보니 졸업 후에 가정용품, 일상 용품을 만드는 경로로 취업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공업 디자인 전공자분들은 모두 전자 회사나 자동차 회사를 가야 하는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18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 시간 동안 틈틈이 가구를 만들어 오셨고요?
맞아요. 디자인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틈틈이 가구를 만들거나 일상 용품을 만들었어요. 통나무를 짊어지고 와서 대패질을 했었고요(웃음). 짜맞춤도 배웠어요. 조금씩 판매도 했었고요.
그때 만드신 가구도 궁금하네요.
그때 만든 물건은 재미있거나 예쁘고 신기한 눈에 띄는 요소가 강했어요. 디자이너로서 야심이 컸던 거죠(웃음). '어떻게 하면 물건이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부족했어요.
삶 속에 스며드는 가구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작은 규모로 물건을 만드는 분들을 위한 공예 플랫폼을 운영했었어요. 저는 늘 수공업 문화가 잘 살아남기를 바라왔거든요. 공예품을 판매하면서 실용성을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은 뭘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하게 된 거죠.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다소 내려놓았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물건은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이잖아요. '물건에 주인과 함께 할 영역이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니 어렵지는 않았어요. 이 전에는 재미있거나 예쁘거나 신기한, 다소 눈에 띄는 물건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조화를 추구하게 된 거 같아요. 물건을 쓰는 사람의 삶을 생각하고, 다른 물건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거죠. 다만 도잠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특별한 느낌, 특별히 애정을 줄 수 있는 요소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도잠을 창업하기 전에 6개월간 긴 고민을 하신 걸로 알아요. 그동안 해오신 고민을 조금 더 깊게 하시는 기간이었을까요?
고민을 깊게 하기보다는 제 고민을 어떻게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던 시간이었어요.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디자인한 가구 형태가 있었거든요. 6개월 동안 '이 형태로 가구를 만들고, 합리적인 가격을 설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어요. 기존 생산시스템에 의지하지 않다 보니 어려움은 있었어요. 그럼에도 직접 만드는 수공업 생산방식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수공업 생산방식을 유지하려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대량생산에 비판적이기 때문이에요. 대량생산은 불필요하게 재고를 많이 만들잖아요. 많이 만드니까 *매스마케팅을 하게 되고 폐기하는 양도 많아지고요. 필요에 맞게,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사용하는 수공업 문화가 현대에 맞게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수공업은 안전한 가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돼요. 생산자가 직접 매만지면서 만드니까요.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를 촉진하는 활동이다. 주로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판매'의 과정을 거치는 제품 홍보에 활용된다.
보편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기로 하신 건데,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모두가 반대했어요(웃음). 합판을 파는 회사에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사주니까 팔기는 하는데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다”라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다 해본 거였거든요. 기존에 알려진 시스템으로는 제가 추구하는 가구를 만들 수 없었어요. 우선 저는 신체조건부터 불리했어요. 힘이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거든요. 맨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으니까요. 아직도 거북목과 함께하고 있고요(웃음). 어쨌든 저는 남성분들이 하는 목공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어요.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요. 재료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새로운 방법을 만들지 못하면 가구를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가구는 왜 이렇게 크고 무거운 걸까요(웃음).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말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큰 가구가 저의 집에도 많더라고요.
가구를 만드는 업체가 사용 대상을 4인 구성 가족으로 전제하기 때문일 거예요. 5~6년 전만 해도 보통 4인 가족을 정상 가족으로 생각했으니까요. 대상이 정해져 있으니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거죠. 저도 늘 가구가 크고 무거워서 힘들었어요. 삶의 변화를 쉽게 주고 싶은데 무거워서 안 되니까 안타까움도 많았고요.
여러모로 무게는 대표님에게 정말 큰 숙제였겠어요.
맞아요. 무게 때문에 억울할 때도 많았어요. 목공을 하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쉽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기존의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타고난 신체 때문에 하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해요(웃음). 그래서 도잠은 늘 여성이 만들 수 있고 여성이 사용할 수 있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합판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무게를 덜기 위함이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도잠은 여성 제작자가 가구를 만들고 있잖아요. 이 점도 가벼운 가구를 만드는 점과 연관이 있을 거 같아요.
맞아요. 도잠이 여성 제작자가 작업하기 때문에 가구 무게를 많이 고민하게 되는 거 같아요. 여성분들이 도잠 가구를 많이 사용하고 계시는데 이분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잠의 시스템은 힘이 약한 제가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다른 여성들도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함께하면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가볍고 단단하다는 건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많이 고민하셨을 텐데 어떻게 가볍고 튼튼한 가구를 만드세요?
도잠은 100% 짜맞춤으로 가구를 만들어요. 그리고 나무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고요. 도잠이 6년 전에 가구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때 가구를 사신 분도 지금까지 잘 쓰고 계세요. 도잠의 가구는 튼튼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웃음). 그리고 가구를 잘 들 수 있게 디자인해요. 가구를 만들 때 꼭 손잡이가 아니더라도 손잡이처럼 잡을 수 있는 부분을 설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직접 재단 공장을 만드셨어요. 이 역시도 작은 집에 놓을 가구와 관련이 있나요?
맞아요. 그동안 재단은 도잠이 직접 해내지 못한 단 한 가지 일이었어요. 합판이 재단되기 전에는 크고 무거워서 이걸 들고 재단기에 넣는 게 무척 어렵거든요. 그래서 외부 재단 업체에 맡겨왔는데 이번에 물가가 많이 오른 거예요. 나무 가격도 오르고, 택배 가격도 오르고 다 올랐어요. 재단 비용도 많이 올랐고요. ‘작은 집에 사는 법’을 제안하는 도잠의 가치를 생각하면, 가격은 굉장히 중요한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져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공장을 직접 차리게 되셨군요.
네. 기존 가격을 맞출 수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이 작업하려면 합판을 들고 내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재단을 해야 했어요. 이에 대한 고민 끝에, 힘이 필요하긴 하지만 해결이 가능한 방법을 찾았어요. 공장은 운영한 지 2주 정도 되었고 작업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웃음).
도잠에 작은 집에 놓일 가구를 위한 요소가 많은데요. 이 중 어떤 요소를 가장 유념하고 계세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해요. 형태는 그다음이고요. 가구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도잠은 순환을 고려하면서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평소에 환경보호, 기후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할 때 환경운동단체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거창하진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어요.
낭비 없는 목공을 위해서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우선 쓰고 남은 목재를 소재별로 분류해요. 그게 재활용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도잠은 가구를 제작할 때 합판과 *MDF 두 가지 목재를 사용하고 있어요. 합판은 가구 재료로 사용하고 MDF는 합판을 재단할 때 합판을 받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다 쓰고나서 이 둘을 잘 분류해야 재사용이 가능해서 분류에 신경을 써요. 그리고 마감칠을 할 때는 내용물을 탈탈 털어서 한 방울까지 다 쓰이도록 하고 있어요(웃음). 남은 용액은 절대 물에 버리지 않고요. 용액이 들어있던 플라스틱 통은 손잡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단일 소재로 분리배출이 어려워요. 화학물질이 적다지만 내용물을 물에 씻어서 버리고 싶지 않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통은 폐기하고 있지만 금속 통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따로 모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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